일본 위스키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요즘, ‘왜 이렇게 비싼가요?’라는 질문이 많다. 단순히 맛있어서, 혹은 브랜드 파워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한 세기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역사와 드라마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위스키가 어떻게 태어나고, 몰락했으며, 다시 전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는지를 찬찬히 되짚어본다.
1. 일본 위스키의 시작과 황금기
1920년대, 일본 청년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위스키 제조법을 배우고 돌아온다. 그는 귀국 후 산토리(당시 코토부키야)의 창업자였던 토리 신지로와 함께 일본 최초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 ‘야마자키’를 오사카 외곽에 설립하게 된다.
일본의 기후, 물, 장인정신은 위스키에 새로운 성격을 입혔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보다 부드럽고 섬세하며, 깔끔한 맛을 가진 일본 위스키는 빠르게 국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는 일본 경제 고도성장기와 맞물려 위스키는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회식 자리에서, 선물세트로, 사무라이 정신을 담은 술로 소비되었다. 이 시기 산토리, 니카 등의 브랜드는 각종 위스키를 쏟아내며 시장을 장악했고, 일본은 세계적인 위스키 강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2. 몰락의 시작
그러나 영원한 인기는 없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위스키는 “아버지 세대의 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맥주나 칵테일이 대세로 떠오르며 위스키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일본 주류 시장의 소비 트렌드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몰아쳤다. 산토리는 하쿠슈 증류소의 가동을 멈췄고, 니카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중소 위스키 업체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전체 위스키 판매량은 10여 년 사이에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던 수많은 위스키 병들은 창고에 잠들게 된다. 당시엔 실패의 흔적이었지만, 이 오래된 재고들이 훗날 부활의 핵심 자산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3. 부활의 신호탄
2000년대 중반, 세계 위스키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2008년, 일본산 ‘야마자키 18년’이 세계 위스키 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상황이 바뀐다. 일본 위스키가 단순히 ‘국산 대체품’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히비키, 하쿠슈, 니카 퓨어몰트 등 다양한 제품이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일본 위스키는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떠오른다. CNN, 뉴욕타임즈, 포브스 등 주요 언론에서도 일본 위스키를 집중 조명하며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위스키’라고 극찬했다.
그러자 전 세계 컬렉터와 바이어들이 일본 위스키를 찾기 시작했다. 과거 창고에 잠들어 있던 18년, 21년 숙성 위스키들은 한정판 보물로 탈바꿈했고, 리셀 시장에서는 수백만 원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4. 지금, 그리고 앞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일본 위스키 시장이 겪고 있는 문제는 ‘너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수요가 폭발하면서 오히려 장기 숙성 위스키를 만들 시간이 부족해졌다. 대부분의 고숙성 제품은 단종되었거나, 예약제로 한정 판매된다.
산토리는 다시 하쿠슈 증류소를 가동했고, 니카는 생산설비를 재정비하고 있다. 치치부 같은 신흥 독립 브랜드도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일본 전역에서는 새로운 증류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숙성이라는 시간의 벽은 단축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일본 위스키는 ‘시간이 만든 희귀한 술’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마치며
일본 위스키는 단순한 주류 산업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기술과 정성, 실패와 기다림, 부침의 시간을 모두 통과한 후에야 지금의 자리에 섰다. 한때는 아무도 찾지 않던 술이,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리미엄 위스키가 되었다.
한 병의 술에 담긴 역사와 무게를 알고 마시면, 그 맛은 또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